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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교회에서 바라 본 한국 선교의 미래상 -이재환 선교사

선교지 소식



작성자 김은수
작성일 2010-11-18 (목) 10:52
ㆍ조회: 4212      
지역 교회에서 바라 본 한국 선교의 미래상 -이재환 선교사
2009-03-23  http://www.m2414.org
 
미래를 아는 사람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나는 그 동안 ‘선교’라는 큰 과제를 들고 교회를 통해 이루어질 선교의 미래를 고민하며 선교사의 입장에서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애를 써왔다. 그런데도 목회의 현장이 아닌 선교의 현장에서 위의 제목으로 글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다는 것을 느꼈다. 자칫하면 교회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깊이 고려하지 않은 채 선교사로서 단면적으로 바라본 글을 쓰게 될까 바 걱정되었다. 그렇게 되면 선교미래상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추상적인 공중 누각을 지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국 선교의 과거와 미래를 수없이 살피고 진단한 것에 용기를 얻어 주어진 주제를 밤새 고민하여 계시적(?) 인도를 구해 보았다. 그리고 나름대로는 지역교회가 바라는 미래의 선교상에 대한 의견들을 수렴해 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지역교회들의 생각을 다 모을 수는 없었지만 대화를 통해 얻은 저들의 생각과 바램을 정리해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의 선교미래를 향해 실제적인 기대를 품고 감사하게 되었다.


1. 현재에서 바라보는 미래의 언어들

19세기는 선교의 위대한 세기였다. 그러나 20세기는 더 위대한 세기였다. 그렇다면 21세기, 즉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기는 가장 위대한 세기일 것이다. 얼마 전 ‘AD 2000 & Beyond Movement’에서는 전 세계를 하루 속히 복음화 해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임박한 선교에 대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이처럼 많은 선교 전문가들이 지금이야말로 선교의 마감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다음 세대는 존재할 수 없다는 확신을 나누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22세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감을 말하기도 한다. 앞으로 30년이면 복음화를 마칠 수 있다는 낙관론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선교사들을 ‘선교의 마지막 주자(Last Runner)’ 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여파로 ‘백 투 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이라는 중국교회가 받은 비전을 한국 땅에도 가지고 와서 함께 열을 품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그간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 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이스라엘이 마지막 때의 중심부에 서서 마지막 때의 긴박성을 고취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Israel Mandate나 Christian Zionism이라는 강한 단어를 사용함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주 가까웠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보아도 임박하고 시급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이 시대가 마지막 때라면 우리는 사도행전 2장17절 이하에 기록된 마지막에 일어날 선교적 부흥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 땅의 대 부흥을 꿈꾸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의 부흥과 미전도종족 선교가 맞물려 간다면 우리는 가장 위대한 추수기(The Great Harvest Season)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면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는 마태복음 24장 14절이 성취되는 날이 머지 않았다. 교회는 이 일이 속히 일어나도록 적극적으로 미전방개척 선교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열방을 향해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채워지도록 총체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한 이스라엘의 마지막 구원의 역사가 문자적으로 일어날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며 모든 선교단체가 적극적으로 동역해야 한다(롬11: 25, 26). 이렇게 선교와 마지막 때가 불가분의 관계라면 선교의 마지막 불을 강렬하게 지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선교의 마지막 추수기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기다리며 준비할 것인가가 현 교회들의 당면한 과제일 수 밖에 없다.

선교를 단지 그 종족과 민족의 구원만을 목적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땅끝에 복음이 전파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Thy Kingdom come)라고 하는 거시적 비전으로 선교에 임해야 한다. 지난 25년의 우리나라의 선교의 역사를 살펴보자. 80년대의 이전 시기를 선교의 유년기로 본다면 그 후에 1995년 전까지를 소년기라고 볼 수 있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는 가장 뜨겁게 겁 없이 선교 현장에 투자와 투석을 했던 청년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바른 선교방향과 새 비전을 꿈꾸어야 한다. 아직도 미숙한 곳이 많이 있지만 이제는 선교의 완성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감지하면서 마지막을 정말 잘 달려야 하리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래를 진단하고 계획하고 도전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2. 지역교회의 강력한 선교 교회화

선교는 선교 단체가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이다. 선교 단체는 교회의 사역을 위한 시녀로 남아 있어야 한다. 선교의 가장 중요한 핵과 힘은 지역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마지막 주자의 사역을 우리 세대에 이루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불같이 타올라야 할 지역교회의 선교 교회화이다. 이 교회의 철저한 선교 지향적인 헌신이 없이는 세계복음화를 위한 성공적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5만여 한국교회의 선교 참여율이 15%-20%라고 어느 통계에서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한국이 되거나 마지막 선교주자로서의 비전의 성취는 불가능하다. 세계 복음화 완성의 환상을 가진 21시대에 아직도 선교의 긴박성과 당위성을 느끼지 못하는 교회를 향하여 기초적인 선교를 말하고 있다면 한국 교회가 세계복음화에 앞장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력한 교회의 선교자원화를 위해서는 첫째, 많은 사람을 현장 선교사로 헌신시켜야 한다. 둘째, 성도를 선교자원화로 삼아 강력한 중보기도 선교사 즉 무릎 선교사로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업을 가지고 일터에서 선교사적 삶을 살도록Business for Mission이나 더 강력하게 Business as Mission(BAM)로 정체성을 세워 주어야 한다. 이같이 모든 성도가 선교적 삶을 살도록 강력하게 도전하고 밀도 높은 헌신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선교의 목적인 마태복음 24장14절에 근거한 ‘선교적 종말’에 삶의 초점을 맞추며 역동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열 처녀 중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다시 오실 신랑 예수를 기다리는 삶이 선교적 삶이다. 이 신랑 예수가 선교를 통해서 이 땅에 오심을 알고 철저하게 선교적 Forerunner(선두주자) 로 살도록 인식 시켜주어야 한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초림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선두주자 이었다. 우리도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면 세례 요한과 같은 선두주자가 되는 것이다. 선교의 대 부흥 추수기가 오면 지역 교회 안에서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군대처럼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이 일을 대비하여 준비해야 한다. 만일에 교회가 여전히 현실적 사정에 얽매어 지역교회의 부흥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한국교회는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선교의 세기에서 탈락되고 말 것이다. 세계복음화는 우리가 아니라도 필연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3. 현지인이 주도하는 선교

선교의 중요한 성패는 선교사 개인의 성공에 달려 있지 않다. 바른 선교의 성패는 현지인에게 리더쉽이 잘 이양(Empowering)되었느냐에 달려 있다. 그냥 넘겨주는 이양(Hand over)이 아니라 현지인을 지도자로 키워서 다른 사람을 제자화할 수 있는 리더쉽과 순수한 헌신, 그리고 영적 능력을 발휘하는 신실한 일군을 양육하여 마침내 그 현지인 리더에게 사역을 이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랄프 윈터는 오래 전에 한국 교회를 향하여 선교사들의 2/3가 선교지에서 돌아 와야 할 것을 말했다. 첫 번째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한국 교회에 바른 선교를 제시하기 위해 선교경험이 풍부한 전문인 사역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시기적으로 선교지를 이양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선교사가 현지인을 키운 후에도 선교지에서 현지 교회의 목회를 하며 교회의 주인이 되어 교회를 다스리고 있는 모습은 바른 선교의 모델이 아니다. 선교사는 사도적인 사역자이지 결코 목회자가 아니다. 이처럼 교회는 선교의 주인이 현지인임을 명심하고 현지인 중심의 사역을 꿈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 지 교회를 세우는 것을 선교라고 알고 있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이는 교회의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과시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국에서 그 교회를 원격 조정하는 것은 식민주의적 선교의 방법이다. 선교사가 직접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 지도자의 개척하는 것을 도와 주는 선교가 바람직한 선교이다. 조직과 교단의 형태로 모인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교회의 진정한 성도를 교회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특히 이슬람권 안에서의 교회 건축은 어렵다. 이러므로 이슬람권 안에서는 가정 교회의 모습이 가장 적합한 교회 형태일 것이다. 이런 소규모의 교회의 형태를 유지할 때 사역이양이 가장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다. 선교의 이양의 형태는 다섯가지의 선교유형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첫째는 농부처럼 복음의 씨를 뿌린다. 둘째는 현지인을 제자화하고 양육을 한다. 셋째는 제자화된 현지인 동역자와 함께 동역하면서 이양을 준비한다. 넷째는 동역하던 현지인 리더쉽 아래 들어가 교회를 섬긴다. 다섯 번째는 현지인에게 교회를 이양하고 떠난다. 이것이 가능한 한 짧은 기간에 이루어지질 때 그 선교를 성숙한 선교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양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선교는 실패작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서양 선교 단체로부터 이런 이양의 모습을 잘 배운 나라이다. 아직까지도 서양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목회를 하거나 기독교 단체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한국교회의 부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선교사는 결코 주인이 될 수 없고 돕는 자로 사역해야 한다. 현지인이 주체가 될 때 진정한 영적 부흥과 숫자적 배가가 가능하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이를 실천 할 때가 되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왕처럼 군림하거나 강한 리더로 남아 있는데도 한국 교회가 그들에게 이양을 독려하지 않는다면 선교지는 여전히 가부장적 선교(Paternalism)의 형태로 영적 부흥을 기대할 수 없는 선교적 식민지로 남게 될 것이다.

4. 한계성을 용납하는 선교

전략가들이 말하기를 전 세계가 복음화 되려면 최소한 46만 명의 선교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복음주의적 선교사의 숫자는 기껏해야 16만 명 정도이다. 전 세계는 65억 인구 중에 24,000개의 종족과 6,800개의 언어 그룹들, 13억이라는 무슬림, 8억이라는 힌두인, 다른 8억의 불신자들, 4억의 불교, 1,400만의 유대인들 그리고 셀 수 없는 미전도 종족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과연 16만명의 선교사들이 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기존 선교사들에 의한 세계선교가 가능할 수 없다는 이론이 나온다. 이 뜻은 선교가 가능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부정적인 현실을 깨달을 때 최소한 가능성 있는 실제적인 전략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할 때 적과의 싸움이 가능하다.

13억의 무슬림을 어떤 방법으로 복음화 할 것인가? 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 밖에 없다. 그 방법이 바로 ‘Power Evangelism(Encounter)과 마지막 때의 큰 부흥(The Great Harvest)’이다. 사도행전 2장 17-21절에 그 대답이 있다. 우리의 불가능을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우리의 한계성을 깨닫고 하나님이 하시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선교 자세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스스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실현하실 것이다. 요엘 선지자가 이것을 예언했고 사도행전에서는 초기 사역을 통해서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보여 주었다. 로마서 10장 13절에서는 실제로 그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야 할 것을 예언했다. 선교사들이 성령으로 무장되는 것이 그 해답이다. 마가의 다락방의 사건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베드로의 사건이 리비아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남미의 곳곳에서도 일어 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우리는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기대하며 준비해야 한다. 이를 선교의 중무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사건은 보수도 진보도 중간도 없이 함께 기대해야 할 하나님의 선교 전략이다. 선교의 한계성을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선교전략의 가치를 알게 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강한 역사를 바라는 인내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앞으로는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와 중보기도 사역자가 함께 동역하는 선교가 필요하다. 이런 필요 때문에 ‘The Call 2 All’이 열리게 되었다. 이 운동은 선교와 기도가 함께 나가야 한다는 시대의 당위성을 깨닫고 기도운동과 선교 운동을 함께 하자는 운동이다. 이로써 전 세계의 미복음화된 사역지를 중보기도 단체들이 분할하여 기도함으로 역동적인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게 되었다. 마지막 때의 선교는 성령의 강한 능력을 의존하고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방팔방으로 선교를 제한하고 있는 세력들이 선교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슬람이 갈수록 강성화되고 있다. 과거 그 어떤 냉전의 시대보다 더 차겁고 무거운 정치적 상황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서, 세계화의 중앙에서 일어나는 무한 경쟁, 그리고 미국과 테러의 전쟁 속에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선교의 장벽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곤혹을 치루었던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사태를 어디서나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은 하나님의 선교전략인 강력한 능력 선교를 기대해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교회가 이 강력한 기도 운동을 주도함으로 모든 이 역사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할 때, 성령님의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선교가 승리하게 될 것이다.  


5. 혁명적 전략이 필요한 이슬람 선교

“이슬람의 무슬림이 쯔나미 처럼 몰려온다!” 한국 교회 신문에 난 큰 활자의 제목이다. 이 무슬림이 한국 땅에 쯔나미 처럼 몰려오는 것을 환영해야 하나 아니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나? 무슬림들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두려운 일일까? 그들이 우리의 공포의 대상이어야 하는가? 기사를 읽어 보면서 이슬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교회를 바라볼 때 아연 실색할 수밖에 없다. 철저히 차단하고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들의 입국을 차단할 것인가? 막을 길이 없다.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는 이미 아랍국가들과 KAS(Korea and Arab Society) 문화적 결연이 되어 버렸다. 이슬람은 한국을 이슬람의 관문으로 보고 다가오고 있고 우리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오는 이슬람화 전략이 무조건 무섭기 때문이다. 국제 결혼, 학교 교수들 매수, 학교 설립, 문서전도, 그리고 여기 저기 세워가는 모스크와 기도처 건립 등이 우리의 두려움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이야 말로 우리가 환영하며 사랑하고 돌 바 주어야 할 복음의 대상들인 것이다. 정작 두려운 것은 이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한국교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슬람 국가 속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찾아가서 문을 열기를 구하면서 그들이 들어오는 문을 닫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찾아 오는 이유는 우리를 무슬림화 하고 이슬람국가로 만들려고 하는 하키미야(신정정치)교리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테러집단인 알카에다도 우리의 형제, 자매이다. 그들이야 말로 복음을 들어야 할 불쌍한 영혼들이며 가슴이 망가진 한이 맺힌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사랑과 복음을 들어야 할 복음의 대상이다.

무슬림들은 다이아몬드 같이 강한 확신과 신념으로 가득 찬 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 강한 무슬림에게 가장 위대한 힘은 복음이다. 무슬림을 개종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슬람 선교를 위한 혁명적 도전과 생명을 건 복음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그들을 모른다.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이 강한 영전 전투를 대비하여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우리는 선교사를 통해 닫힌 문을 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찾아 오는 그들을 막으려는 의도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우리는 승리의 복음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했다. 이 승리의 복음을 가지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교회가 이슬람이 어떤 종교인지를 공부해야 한다. 성도들을 강한 기도와 영성을 갖춘 전도자로 준비시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야 한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무엇을 믿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이러한 준비가 잘 되어 있는 만큼 그들을 복음화 시킬 수 있는 기회가 더 많게 될 것이다.


6. MP(Mass Media)3의 개발

MP3(음향기기)라는 말은 현대 기계문명의 기기를 통해 선교를 개발한다는 말이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에 가서 매우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 가난한 주민들의 집집마다 인공위성 안테나가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가장 즐거운 행복은 수도 없는 인공위성의 채널을 돌려가며 세상을 맛보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 한창 복음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인 이란의 도시 안에서도 이 인공위성 안테나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인공위성 안테나를 통해 복음이 들어가고 있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철의 장막처럼 선교사의 입국을 막고 있는 이슬람 국가 안에도 이 인공위성을 타고 여지없이 가정 안으로 복음이 파고 들고 있다. 성경 번역은 번역의 어려움과 더불어 긴 시간의 투자와 인내가 요구된다. 번역을 마쳐도 그 성경을 읽게 하려면 문맹 퇴치 운동도 함께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현대 테크닉을 이용한 방송과 영화 그리고 MP3에 녹음된 성경은 이런 어려운 수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많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미전도 종족 마을에는 아직도 구술사회(Oral society)가 많다. 이들에게 가장 쉽게 복음이 전해 질 수 있는 방법은 이런 라디오나 MP3같은 도구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라디오를 갖는다는 것은 우리가 아이팟을 갖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다. 이들은 라디오를 듣는 것이 아니라 라디오가 이들을 붙잡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작은 마을이나 선교지의 복음 전파는 FM방송이 적격이다. 주파수가 고정된 라디오 한 대는 곧 한 명의 선교사인 것이다. 감사한 것은 많은 기독교 방송이 아프리카의 미전도종족들과 가난한 남미의 인디오 마을, 소외되고 고립된 아시아의 마을들 속에 복음전파의 귀한 도구가 되고 있다. 이미 한국은 위성방송시대를 열었고 많은 곳에서 놀랍게 이용되고 있다. CTS, CGN, 그리고 CBS가 위성 방송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지역 교회들도 매우 열악한 기술과 화려하지 않은 무대와 전혀 꾸미지도 않은 기술로 위성을 통한 복음 방송을 하고 있다. 이처럼 방송전파와 위성방송이 수 천명의 선교사의 대역을 위대하게 대행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의 전파를 위해 사용되는 문명의 이기들이 바로 기계 선교사인 것이다. 복음전파를 위해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선교의 발명품들이 있다.  첫번째 발명품은 페트릭 존스톤의 ‘Operation World’ 이었다. 두번째 발명품은 ‘미전도종족 분포 지도’ 이었다. 세번째는 CCC에서 만든 영화 ‘Jesus’ 이었다. MP3를 잘 개발하여 사용할 경우 위대한 4번째의 발명품이 되어 발이 없어도 갈 수 없는 곳까지 복음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7. 중국의 ‘Back to Jerusalem(백 투 예루살렘)’의 선교 전략화

하나님이 중국에게 준 선교의 비전이 “Back to Jerusalem”이다. 중국의 실크 로드를 통한 복음의 서진이다. 이 비전으로 인하여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수 없이 순교의 길을 걸었다. 마카차오나 마크마 등이 초창기에 이 비전을 받은 사람들이다. 중국은 이제 선교 대상 국가가 아니다. 이미 1억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꿈틀대고 있다. 백 만명의 선교사파송을  기다리고 있으며 암암리에 이미 선교지에 투입되고 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이들의 ‘Back to Jerusalem’운동에 불을 붙여 주어야 한다. 중국 교회는 지금 마가의 다락방의 120명처럼 불에 달구어져 있다. 그런데 열정은 타오르고 있으나 갈 길을 모르고 있다. 선교정보가 필요하고 도전과 훈련이 필요하다. 죽음을 각오한 살아 있는 순교자들이 복음을 위해 전진하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 교회는 바로 이들의 교회가 선교교회가 되도록 현지 선교사들을 잘 훈련시켜 무장화 시켜야 한다. 이 실크로드가 바로 선교가 이루어질 강한 전략 루트가 되는 것이다. 강성 이슬람이 배수진을 치고 있는 회족, 우루무치의 위그루족, 키르키즈스탄, 타지크스탄, 우즈베키스탄, 미얀마, 베트남, 부탄, 벵글라데시, 네팔, 인디아, 파키스탄, 몽고, 그리고 카작스탄이 중국 주위에 널려있다. 잘 준비된 현장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처럼 지형적으로 선교를 위해 준비된 나라가 없다. 중국을 선교의 센딩 베이스로 만드는 전략이야 말로 이 세기의 가장 중요한 대 전략일 것이다. 이미 중국은 이런 루트를 다 개발해 놓았다. 북경에서 티벳까지의 고속 철도와 국경도시를 통한 경제 실크로드를 통해 길과 시장을 이미 다 열어 놓은 상태이다. 단지 복음이 이 루트를 통해 통과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주변 나라는 이미 중국이 아니면 시장 경제를 운영할 물자가 없다. 실크로드를 통한 ‘Back to Jerusalem’은 성공할 것이다. 중국 땅에 준 이 비전은 살아날 것이다. 메카차오의 이 비전은 기필코 성취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중국 선교의 전략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에 준 엄청난 축복과 비전을 이들을 통해서 이루어야 하겠다. 중국은 세계선교를 위해서 준비된 아름다운 도구이다. 이 도구를 쓸모 있는 위대한 도구가 되도록 도울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선교 한국이다.


8. 과감한 투자를 요하는 전방 개척 선교

미전도 종족이 남아 있는 것은 창의적 접근 지역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교회와 선교 단체 그리고 기꺼이 순교를 각오한 선교사들의 재 헌신이 따라야 한다. 마치 초창기의 선교의 열정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인상이 든다. 철옹성 같은 OIC 57개국의 지역들, 백인들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서부 아프리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북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소말리아와 사하라 사막의 전투지 그리고 아시아의 강력한 스탄 나라들이 우리가 가야 할 전쟁터이다. 이 격전지에 누가 갈 것인가? 누가 생명과 삶을 투자 할 것인가? 폴 플레밍이 1940년대에 파푸아뉴기니를 갔을 때는 그 곳에 식인종들이 먹은 해골들이 장식품으로 있었다. 많은 선교사들이 이 식인종의 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먹어 치운 선교사의 피와 살이 오늘 날 그들에게 생명의 떡과 포도주가 되었다. 어쩌면 지금이 그 때와 동일한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슬람 세계는 아직도 선교사의 목을 자르고 순교를 시키고 있고 가면 갈수록 문을 더 굳게 닫고 있다.

많은 이슬람 국가, 불교 국가와 힌두교 국가가 포교금지법을 만들고 있다. 이란은 포교하다 잡히면 사형을 시키도록 되어 있다. 알제리아는 3년 징역에 벌금이 1500만원이다. 그들에게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그런데 이런 선교 금지법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만들어 지고 있다. 이런 법들이 바로 식인종들이다. 어쩌면 선교가 불가능하게 보인다. 거인 같은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산이 사람들에 의해 정복 되었다. 이 무서운 어려운 창의적 접근지역이 곧 복음의 평야를 이룰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사역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교의 재 헌신을 필수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훈련된 선교사가 더 많이 투입되어야 한다. 특별히 전방 개척선교를 위해서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물론 통상적 선교가 잘못 된 것은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중복투자를 지양하고 철저하게 전방개척선교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이제 남은 창의접 접근 지역은 환경적으로 가장 열악하거나 더 강한 종교법으로 복음의 문을 철저하게 닫은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북한, 사우디 아라비아, 아프카니 스탄, 소말리아, 몰디브, 예멘, 라오스, 에리트리아, 부탄, 중국, 파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코모로, 이라크,카타르, 모리타니아, 알제리, 체첸 등이 이러한 강한 국가들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28장 18이하의 대 위임은 이미 선교지의 문이 열려 있음을 말하고 있다. “너희는 가서…”라고 말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복음을 닫을 나라는 한 나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닫으려는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입성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셔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선교

선교사들의 하나됨과 연합 그리고 미래 지향적 전략을 따라서 현지인을 일군으로 만들어 그들에 의한 그들의 교회를 세워 재생산하는 교회로 든든하게 세워가는 일이 필요하다. 선교지에 있는 선교사들을 재 배치하고 바른 선교 목적을 이루도록 그들 스스로 선교적 교회를 만드는 일을 감행하도록 해야 한다. 오래된 베테랑 선교사들을 본국으로 불러 들이어 교회는 그 일군들을 선교에 재 투자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일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중앙에 서서 멀리, 높이, 넓게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밀하고 강한 선교적 교회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재 헌신하는 일군들과 전방개척 선교사를 적절하게 배치해 줄 선교 단체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군사를 군대로 일으키어 세상을 복음으로 평정할 것이다.(행2: 17-21). 이 일을 이루기 위해 교회는 성도들을 군화를 신은 신부, 즉 중보기도자로 훈련시켜야 한다. 이들의 기도가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앞당기게 할 것이다. 그리고 선교 단체는 교회를 돕는 시녀로 선교에 전폭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교회와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이 마태복음 24장 14절을 이루기 위한 ‘선교적 종말’의 의식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한 의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를 통한 마태복음 24장 14절이 성취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가능하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간절히 이루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복음은 어떠한 장벽도 무너뜨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전략과 노력 때문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그리고 성공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선두주자의 몫을 다 할 것을 믿고 있다. 선교는 이루어진다. 땅끝까지 복음이 이르렀다는 말씀이 성취 될 것이다.(롬10: 18) 이처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그 꿈을 이룰 한국교회의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럽고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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