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영광
“…The Glory That Should Follow”
“…그들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다가올 영광을 미리 증거하실 때, 그 영이 무엇을, 또 어떤 시기를 지시하시는지 탐구했던 것이니라.”(벧전 1:10-11, 한글킹제임스)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다가올 영광을 증거 하셨을 때,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들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께서 어떤 시기와 환경을 지시하시는지를 알아내려고 영의 영역을 조사하고 열심히 탐구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고난 바로 뒤에, 영광의 생명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거듭난 사람은 아무도 다시는 고난의 생명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며 고난 받으셨고, 우리를 대신한 그분의 그 고난이 우리를 영광의 생명 가운데로 인도했습니다. 그분께서는 괜히 고난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53:5은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며, 그분께서 징계를 받으시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시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분께서 고통 받으셨으므로, 당신은 고통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 누구든지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다 이루셨음에도 불구하고 무지의 값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4:6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암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서 자기 대신 쇠약하게 하는 질병의 고통을 이미 당하셨음을 알고 그 지식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도행전 14:7-11에서 루스드라에서 사도 바울에게 일어났던 일을 떠오르게 합니다.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그곳에 걷지 못하는 남자가 앉아서 복음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주목하여, 그에게 나을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행 14:10) 바울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 뒤에 반드시 영광의 생명이 와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고, 그 결과 불구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 남자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즉시 나았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지금까지 걷지 못했던 사람은 이제 걸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눈 먼 사람은 이제 볼 수 있습니다. 생명과 빛이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죽음도, 어둠도, 패배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질병과 실패를 폐하시고, 우리를 영광과 존귀와 위엄과 탁월의 생명 가운데로 옮기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에 영원히 영광을 드립니다!
기도
사랑하는 하늘의 아버지, 당신께서 나를 영광과 능력과 위엄과 탁월의 생명으로 불러 주시고, 당신의 영광의 표현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나는 말씀 안에서 당신의 영광을 계속해서 바라봄으로써, 통치하는 특별한 삶으로 변모되고 배치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 60:1, 롬 8:30, 벧후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