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Don’t Accept Poverty!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하나님의 특징이나 성품 안에는 그분께서 자녀들이 가난하기를 원하신다고 주장할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가난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요한삼서 1:2은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종교적인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파산하고 가난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게 하지만, 말씀은 다르게 계시합니다. 가난을 믿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발언권을 갖지 못하고, 아무것이나 매우 쉽게 감수하며, 언제나 모든 것을 달라고 애원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 아닙니다. 당신은 왕자입니다. 재정적인 형통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권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살도록 정해진 그 형통의 삶을 살도록, 당신을 도와주고, 안내하고, 배치할 것입니다. 당신이 말씀 안에 계속 머물면,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길 가운데 당신을 세워줄 것이며, 그 길에 가난은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면, 그분께서 왜 사랑하는 당신이 가난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그분은 가난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왜 그분께서 자녀들이 가난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당신을 향한 그분의 계획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 도와줄 수 있고 그분께서 당신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실 수 있도록, 당신이 차고 넘치도록 갖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부자 행세를 할 수는 없어요.” 사실 가난은 당신이 무엇을 소유하거나 소유하지 못한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가난은 무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마음의 상태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갖기에는 옳지 않은 정신입니다.
형통을 생각하고 말하십시오. 그것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처럼 이렇게 말하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말씀이 당신의 형통을 증거 합니다. 이를 실재로서 취하고, 형통을 당신의 생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주저하지 마십시오.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저에게 돈과 힘과 평안과 건강과 아이디어가 결코 부족하지 않은 형통의 삶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의 힘의 권능 안에서 강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빌 4:19, 고후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