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초월하여 살기
Living Beyond Senses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
로마서 9:8은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라고 말씀합니다. 육신의 자녀는 감각의 지배를 받는 자들입니다. 육신의 자녀는 믿음으로 걷지 않고 감각의 지각 작용으로 걷습니다. 즉 육체로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거나 냄새 맡을 수 있는 것만으로 삶을 통제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믿음의 행보입니다. 그것은 감각을 초월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영(a Spirit)이십니다. 인간의 감각은 영적인 실재를 인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인이 성령의 일들을 깨달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성령의 일들은 자연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입니다(고전 2:14). 자연인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육체 감각이 인지하는 것하고만 관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자녀의 언어이며, 그래서 성경은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5:7(AMP)에서 사도 바울이 제시한 것을 읽어보십시오. “우리는 믿음으로 걸으며[우리는 인간과 하나님 및 신성한 것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확신 또는 신념에 의해서 신뢰와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처신하며, 즉 그렇게 우리가 걸으며] 보는 것이나 나타난 현상에 따라 걷지 않는다. (For we walk by faith[we regulate our lives and conduct ourselves by our conviction or belief respecting man's relationship to God and divine things, with trust and holy fervor; thus we walk] not by sight or appearance.)” 믿음이라는 주제에 관한 주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너희가 믿는다면 볼 것이다”라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11:40에서 마르다의 불신앙에 대한 그분의 대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순서에 주목하십시오. 당신은 보기 위해서 믿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육체 감각이 인지할 수 없는 것을 실재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서 11:1(AMP)은 말씀합니다. “이제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보장(확인, 권리증서)이요,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증거이자 그것들이 실재라는 확신이다. [믿음은 감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사실로 인지하는 것이다] {(NOW FAITH is the assurance(the confirmation, the title deed) of the things [we] hope for, being the proof of things [we] do not see and conviction of their reality [faith perceiving as real fact what is not revealed to the senses].}” 그런 다음 히브리서 11:6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당신이, 육체 감각은 인지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나타나 있는 것을 붙잡고 실재라고 부르는 법을 배울 때까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영역에서 걷는다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권위로 받아들여서, 물리적 또는 감각적인 증거와는 상관없이 그에 따라 산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듣고” “보든지” 상관없습니다. 감각을 초월해서 사십시오. 계속해서 믿음의 말씀을 선언하십시오.
고백
나는 육체적인 감각으로 인지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신성한 왕국의 영적 실재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선언합니다.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오늘 그리고 항상 신성한 건강과 절대적인 번영과 끝없는 성공과 흘러넘치는 기쁨과 말할 수 없는 평안을 경험합니다. 아멘.
참고 성경
히 11:1, 고후 5:7(AMP)